재수사 1,2 - 장강명 지음

book 2022. 10. 3. 02:01 |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내가 하는 독백인 줄 알았다.

 

도스토예프스키라면 한때 '죄와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고 주변에 몇 마디 읊조리곤 했다. 당시의 내 젊음에는 문학이 정리된 구조로 자리잡지 않았다. 그 책들은 죄, 벌, 구원, 인간,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이 무거운 단어들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도스토예프스키도, 죄, 벌, 구원, 인간, 신 등에 대해 말하거나 쓰지 않는다. 

 

만약 저 단어들에 대해 내 생각을 말 해 보라 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거나 그것도 싫으면 장강명의 재수사를 읽어보라 해야겠다. 아마 내가 하는 말은 추상적일 것이며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 하나 빙빙 돌리는 모호한 문장의 나열에 지나지 않을 터이니 소설로 대신하는 것이 울림이 클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재수사 1,2권을 다시 머리 속에서 쓰윽 훑는다. 책을 잡고는 뭐가 마려운 사람처럼 낑낑거리며 책에 매달렸다. 책에 대한 리뷰는 전혀 찾아보지 않았다. 작가 장강명은 무척이나 영리했다. 일단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대체 재수사의 끝, 범인은 누구일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어쩌지 못했기 때문이다. 

 

홀수 장(chapter)은 범인이 썼고, 짝수 장은 형사들의 수사 상황이 전개된다. 홀수 장이 초반에는 매우 신선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및 러시아 문학 일부와 계몽주의를 비판하는 철학적 서사들이 뭔가를 자극한다. 소설에서 이렇게 지적이며 진지한 철학적 서사를 목격하다니.

하지만 슬슬 홀수 장이 지겨워 지기 시작한다. 어느 지점부터 살인자의 자기 위안, 궤변이 부담스럽다. 우린 이렇게 살지 않는다. 이런 논리를 허용하는 삶은 세상엔 없다. 그래 그냥 미친 인간이다. 

 

결국 거의 앉은 자리에서 두 권을 끝냈다. 아마 식탁에서 화장실 변기 위로 옮겨가서 끝냈던 거 같다. 

미시적이고 가족적이며 개인사가 소설의 주요 소재가 아닌 소설 두권을 연달아 읽는다. 김훈과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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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는 안될 일을 모두 기술할 수 있을까. 

세상의 우연 모두를 기록하다 보면 현재의 내가 왜 이런지 결국엔 정리해 낼 수 있을까. 

 

길을 떠나는 존 그레디, 롤린스...그 길에서 만난 불길한 기운의 블레빈스

아름다운 귀족의 딸 알레한드라...그리고 고모할머니, 경찰서장 등

 

꼭 그래야만 했을까. 

꼭 떠나야 했고

블레빈스를 데리고 다녔어야했으며

알레한드라와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으며

블레빈스의 복수를 했어야 했고, 말을 꼭 찾아서 주인에게 돌려주려 했어야 했을지. 

 

존 그레디 콜에게서 삶의 거대한 중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척추를 느낀다. 국경에서, 광야에서, 감옥에서 그를 넘어뜨리려는 모든 것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다가오는 폭력을 더 큰 본능으로 지배하고, 사랑 앞에 물러서지 않으며, 세상의 모든 예쁜 말들을 인간만큼 아끼고 사랑하는 

 

얼마 전까지 인간은, 그 족속 중 특히 남자들은 저렇게 살았을 거 같다.  제도가 촘촘해지지 않았던 시대, 폭력과 권력이 국가로 독점되지 않아 사적인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 우린 그 시대로부터 조금씩 길들여져 여기까지 왔다. 

 

규칙을 지키고,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집행의 정교함을 발전시켜가며 날뛰는 폭력 속의 젊은 수컷들을 제어해 왔다. 

 

존 그레디는 좋은 사람이다. 그랬기 때문에 예쁜 말들의 말을 이해할 줄 알았고, 알레한드라를 사랑했으며, 블레빈스의 복수를 완성한다. 

 

미국적인, 미국의 백 년 전쯤이 눈에 아른거린다. 

거대하고 축복받은 땅을 폭력으로 차지하고 그 땅의 지배자로 삶의 경험이 쌓여가던 때 수많은 존 그레디와 롤린스, 블레빈스가 살다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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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딸

book 2014. 7. 14. 11:48 |

그에게도 딸이 있었구나. 첼레스테라는 아름다운 세례명을 가진...


천문학의 발달사, 당시의 천주교회와 교황성하의 성향, 이탈리아 내 정치적 지형, 봉쇄수녀원의 현황 등이 고스란히 잘 녹아있는 책이다. 비록 갈릴레오가 딸에게 보낸 편지는 사라졌지만, 딸이 그에게 보낸 편지들을 통해서,

갈릴레오 자신이 얼마나 절절하게 딸을 사랑했는지, 과학을 발전시키고자한 의지가 어느정도의 진정성을 가졌는지, 얼마나 교회의 핍박에 대해 부담스러워 했으며, 치떨리게 공격해오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밤을 새우고, 눈이 멀어져감에도 불구하고 대응논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딸과 아버지의 정이 아름답다. 

나도 무언가를 열심히 살아낸 인간이며, 자식을 사랑한 아버지로서,

딸과 이런 대화를, 서신을 나누는 시간이 허락될지...



갈릴레오의 딸

저자
데이바 소벨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2-12-10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최고의 갈릴레오 전기!- 뉴욕 타임스 아...
가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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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출장의 끝

etc. 2010. 8. 11. 23:31 |
아직까지는 자체적인-회사로부터 정식 결재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계획이나,
제주생활은 곧 끝장 날듯하다.

1년이상 서울로 출장을 다녔었고,
올해 들어와서는 거의 매주 주 4-5일을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을 뒤로 하고,
기껏 마음속으로 '아빠 서울 댕겨올께~'라는 말을 뇌까리고는
콜택시에 몸을 맡기고, 위대한 제주국제공항에서 제주발 김포행 7시 대한항공 비행편을 타는 이 생활...

그래도 그나마 위안인 것은,
택시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퇴근해도 별로 불러주는 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신촌을 가고,
신촌 '서른즈음에'에서도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어서 관심없는 주인장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 모든 시간동안

하릴없이 읽고 또 읽은 것.

그래서 인생 그 어느 시절보다,
텍스트와의 친밀감이 늘어난 것이 유일한 위안인듯하다.

그리고 그 모든 책들은 그 자체적인 존재이유들을 가지고 있어서,
왜냐면 자본주의시대의 작가들은 읽힐만한 것들을 쓰며,
출판사 기획/편집자들은 읽힐만한 것들을 자기 급여를 걸고 만드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인지,
어떤 책을 읽어도 그 나름의 생각할 꺼리와 고민을 던지는지라,
삶의 또다른 이면에 대해 이전 그 어느 시절보다 많은 탐구 속에 휩싸여 지내온 듯하다.

지금도 읽는 칼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어제막 끝낸 바바라시의 '버스트' ,
벌써 작가가 기억나지 않는 그 누군가의 '모던타임-센포드 플레밍과 표준시의 탄생' 등
얼마나 많은 세상에 대한 흥분, 삶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지...

한 10년 쯤이 지나,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려는지 모르지만,
사실 이 글도 10년 쯤 지났을때 이시절을 제대로 꺼내기 위한
이 시절에 대한 어설픈 메모한줄쯤이긴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시절이었음을 꼭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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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없어 끄적임

etc. 2010. 2. 11. 19:08 |

오랜만에 휴가를 냈다.

블로그도 일종의 글쓰기라면, 점점 이와 멀어지고 있는 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87년, 중3이던 나는
6.29 선언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치지형과 무관하게
골방에 틀어박혀 몇십장의 연애편지를 끄적였었다.
그때의 그 연애편지들은 여동생을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되었고,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남은건 내 마음을 적확하게 은유할 수 있는 문장을 찾기 위해 중고책방에서 구매한 시집 수십권과,
정성스레 글씨를 다듬는다는게 결국 약간은 여성스런 글씨체를 가지게 된 것 정도랄까...

이젠 이렇게 끄적이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시집 속에서 문장을 찾던 탐색도, 글씨를 다듬던 정성도 삶에서 조금씩 빠져나가고,
차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와이프를 어찌 설득할까 궁리하거나,
가끔 미투데이나, 트위터를 얼쩡거릴 뿐이다.

헌데 연애편지도 글쓰기였나 싶네...

암튼 오랜만의 휴가기념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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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태어났다.

relation 2009. 9. 19. 21:52 |
태명은 '동동이'였다.
9.11에 태어났고,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다.
동동이와 아내와 나,
셋이 한 가족이래니 괜실히 뒤가 든든하고 힘이 나는듯했다.
별일 없는 세상같지만,
난 내 인생에서 특별한 날들을 통과하고있다.

신께 감사드릴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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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그리고 너를 낳은 엄마의 자비로운 손길을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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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녀석이 태어난 날, 하늘이 이렇게 맑았더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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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풍경

etc. 2009. 2. 28. 18:11 |
임신한 아내는 잠이 들었다.
같이 있어달라는 바램에 나도 역시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빌려온 맥북 에어를 이래저래 써보고 있다. 좋은 장난감이 하나 생긴거다.

요즘은 어울리지 않게 성경을 가끔 읽는다.
예수는 대부분의 대화와 연설에 비유와 상징을 동원한다.
반면에 실행방침은 무척이나 간결하다. 
그러한 사고체계와 서술방식은 현대 서양문화 속에도 절절히 내재해있다는 생각에 머문다.

성경에서 비유한 몇몇 단어를 검색해본다.
아이의 태명을 무엇으로 지어부를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탓이다.

어울리지 않는건 골프를 시작한 것도 있다.
요즘은 나이탓인지 뭔가를 새로시작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늦게 시작한 만큼 빨리 습득해야한다.
잘안되면 뒤돌아보지 않고 포기해야지.

내일이면 3월이다.
지난 모든 시간이 다 그렇지만, 최근이 늘 가장 아쉽다.
좀더 유연하고 세련되게 그 순간에 임했어야했어라는 자책이 앞선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꽃이 피어오르는 시절,
주차장 자갈밭 틈에서도 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야 만다.
그 질긴 생명에의 의지만큼 교훈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9월이면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아내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느라 분투중이다.
나도 매일 달라지는 세상에 깊은 뿌리를 뻗치고, 꿈쩍않고 매달려있을것이다.
아직 태명은 정하지 못했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군.
밥을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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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20주기

book 2009. 2. 26. 16:17 |
팀 후배들이 기형도가 누구냐고 메신저로 물었다.
난 '음...대한민국역사상 최고의 시인이지' 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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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기형도 시인


나의 답이 다시 전체메시지로 돌았단다. 저 대답을 재밌게 받아들인거다.
그럴수 있지머...
암튼 기형도가 죽은지 20년이 된단다.
그렇다면 내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난거다.

빈집, 대학시절...등을 읽으면서 찌릿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너무 새롭다.



대학시절
                                            -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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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이자 유고시집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폰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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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이 있어서 일찍 업무를 마감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이미 결정되고 진행되어 버리는건 아닌지라는
조바심에 대해 생각한다.

98년 혹은 99년이던가,
김규항이 씨네21에 연재하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라는 칼럼이 있었다.
짜릿한 글, 글로 인한 전율을 느낀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제목은 그랬다. '혁명은 안단테로'

B급좌파며, 나는 왜 불온한가라는 책들, 그리고 그의 블로그 글을 보는 것은
적어도 나의 정서와 사상적 위치가 어디를 향해야하는지 기어코 확인코자하는 억지같았다.
얼치기 종교인의 비윤리적인 행위 뒤의 습관적인 고백성서 같은...
물론 이런 것은 또있다. 예를 들면 한번도 참석해본적도 없는 민노당 당비를 매달 내는 일 같은...

난 사실 사회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도,개혁세력도, 운동권도 아닌  일반 사회인일 뿐이다.
과거 나와 내 주변 패거리들이  전경을 쫓거나 쫓기며 거리를 달렸고,
짱똘을 던지고, 화염병을 제조하는 기술이 있었고, 쇠파이프에 녹색테잎을 감으며 전의를 불사르던 것이,
그러다 학년이 올라가 그들이 짐스러워, 학교에 남지않고 군대로 탈주를 자행했던
그런 20대 초반의 기억들이 날 말해주지 않는다.

그냥 나는 어느 섬마을에서 결혼해서 직장생활하고,
늦은 결혼후 아이가 태어나면 어찌 키울지에 대한 고민이 태반이고,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끔 술을 마시는 것에 만족하는 살고 싶다는 마음을 늘 되뇌인단말이지.

혁명은 안단테로를 다시 찾아서 읽어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내가 그런 맘을 먹고 살아질 것 같진 않다.

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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