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12.25 오지 않는 꿈 - 박정만

오지 않는 꿈 - 박정만

book 2007. 12. 25. 23:00 |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있다.
성당엘 가고 싶었으나, 일이 좀 꼬였고,
이제 서울 생활을 정리해야한다는 생각에 방청소를 좀 해야할 것 같으나,
깊이 인이 밖힌 게으름으로 인해, 노트북만 켜고 말았다.

오랜만에 떠오른 사람 하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먼 전설 혹은 신화이야기 같은,
광주항쟁 이후, 군부독재의 고문에
건강과 가족과 직업 모두를 상실하고,
술에 의지하다, 외롭게 죽어간 시인 박정만...

다들 흥겨운 크리스마스에, 왠 청승이냐 싶다만,


오지 않는 꿈
_ 박정만

초롱의 불빛도 제풀에 잦아들고
어둠이 처마 밑에 제물로 깃을 치는 밤,
머언 산 뻐꾹새 울음 속을 달려와
누군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문을 열고 내어다보면
천지는 아득한 흰 눈발로 가리워지고
보이는 건 흰눈이 흰눈으로 소리없이 오는 소리 뿐
한 마장 거리의 기원사(祈願寺) 가는 길도
산허리 중간쯤에서 빈 하늘을 감고 있다.

허공의 저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 다 풀뿌리같이
저마다 더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고
나는 꿈마저 오지 않는 폭설에 갇혀
빈 산이 우는 소리를 저 홀로 듣고 있다.

아마도 삶이 그러하리라.
은밀한 꿈들이 순금의 등불을 켜고
어느 쓸쓸한 벌판길을 지날 때마다
그것이 비록 빈 들에 놓여 상할지라도
내 육신의 허물과 부스러기와 청춘의 저 푸른 때가
어찌 그리 따뜻하고 눈물겹지 않았더냐.

사랑이여,
그대 아직도 저승까지 가려면 멀었는가.
제 아무리 밤이 깊어도 잠은 오지 아니하고
제 아무리 잠이 깊어도 꿈은 아니 오는 밤,
그칠 새 없이 내리는 눈발은
부칠 곳 없는 한 사람의 꿈없는 꿈을 덮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