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9년째 담배를 피우고 있고,
가끔 사진을 찍는다.

말못할 사연 한두개쯤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뉴욕 어느 거리, 평범한 사람들의 곡절 깊은 이야기들,
난 그 이야기를 사랑하고,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침 8시 매일 자기 담배가게를 사진으로 찍고,
친구는 아내를 잃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도둑의 돈을 훔친 아이는 도둑에게 쫓기면서도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아가고,
18년동안 헤어졌던 여인은 남자에게 딸이 있다는 소식을 이제야 알리면서 돈을 뜯는다.
매일 아침 한장씩, 4천장을 찍어대던 그 Canon AE-1 카메라는 알고보니 훔친 것이었다.

작은 일상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
삶은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 비정형적으로 점멸하는 것일진데,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세상의 이런 저런 숱한 영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내게 있고,
애정을 가지고 시간을 투여하는 좋은 취미꺼리가 있을 것이며,
그런 저런 꺼리들로 어느 누구와도 맥주한잔을 놓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동네 아저씨가 되는 것이다.
그런 착하면서도 쿨한 좋은 아저씨가 되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회사의 사장이나, 대통령이되는 것만큼뿌듯하고 기분좋은 일일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사실 별로 자신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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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예전에 본적있는데 다시 보니 직접 해보고 싶네...^^

책은 일단 '수잔 손탁'의 '사진에 관하여',
23페이지 다섯번째 문장은...

은밀히 작동하는 자신의 취향과 의식에서까지 벗어날 수는없다. 1930년대 말 미국 농업안정국의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한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들(워커 에반스, 도로시아 랭, 벤 샨, 러셀 리 등등)조차도 자신의 피사체였던 소작농의 정면사진을 수십 장씩 찍었을 것이다. 피사체의 표정을 필름에 제대로 담았다고 만족할 때까지, 그러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빈곤, 존엄성,착취,빛의밝기,짜임새,기하학적 형상 등의 관념에 부응하는  그 무엇인가가 피사체의 얼굴에 명확히 드러났다고 여길 수 있을때까지 말이다. 사진작가는 사진이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선호하는 노출 방식이 있기 때문에, 피사체에 특정한 기준을 들이대기 마련이다. 카메라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생각도 존재하지만,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아의식을 싹 없앤 채 비교적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 것이나 사진에 담는다해도,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내재된 뭔가를 가르치려는 태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행위의 수동성 (그리고 편재성),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진이 우리에게 건네주는'메시지'이자 사진이 드러내놓는 공격성이다.

난 아직 카메라라는 도구에 대한 이해수준이 너무 낮아,
모든 결과물들은 기껏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대상을 선택하고, 내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대한 판단 등,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해석하는 것'으로 등치시키기는
조금 무안한 마음마저 들기도 하네.
어쨋든 수전손탁의 거침없이 휘갈겨대는 저 글쓰기 솜씨에 그저 멍하니 젖어있을 따름이다.
사진의 공격성...
임의로 선택하고, 맘대로 해석하고나서는 그 자체를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사진의 기제,
헌데 그 맛에 다들 사진 찍는 거 아냐...!!!

으...잠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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