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사의 측천무후 읽기

book 2007. 3. 21.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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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사의 측천무후

샨사의 소설 중에 두번째...

어제 팀애들과 책이야기하다가 한참을 이 소설에 대해 떠들어댔다.

책과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끔 말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쁘면서, 말이 막 꼬이는 나를 발견한다.
그 소설의 느낌, 소설이 주던 긴장과 희열에 대한 기억이 온통 얽히고 섥혀서 잘 정리되지 않을 뿐더러,
그저 '괜찮았다'는 느낌만은 너무나 강렬히 남아있어서,
그 기분을 전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까지 섞여드는 그런 나,

이 책의 측천무후가 얼마나 불행한 성장기를 거쳐, 냉혹하지만 위대한 여황제가 되고, 이를 후대가 의도적인 오해를 하는지 등에 대한 내용 보다는,
측천무후의 열정적이면서도 냉혹한 사고와 행동방식들이 흥미로웠다.

가끔 소설을 덮고 빠져나올때, 난 늘 이 작가의 손에 너무 긴장된 채로 붙잡혀있었다는,
그래서 갑자기 힘이 빠지고 허탈해지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이 소설이 날 2도쯤 몸을 데우고 있었다고 해야하나.

이렇게 살기에는 난 너무 멀리 와버렸지만, 가끔은 샨사체(?)로 내 스스로에게 독백하는
날 발견하며 우스워하기도 한다.

ㅋㅋㅋ

:

이거 예전에 본적있는데 다시 보니 직접 해보고 싶네...^^

책은 일단 '수잔 손탁'의 '사진에 관하여',
23페이지 다섯번째 문장은...

은밀히 작동하는 자신의 취향과 의식에서까지 벗어날 수는없다. 1930년대 말 미국 농업안정국의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한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들(워커 에반스, 도로시아 랭, 벤 샨, 러셀 리 등등)조차도 자신의 피사체였던 소작농의 정면사진을 수십 장씩 찍었을 것이다. 피사체의 표정을 필름에 제대로 담았다고 만족할 때까지, 그러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빈곤, 존엄성,착취,빛의밝기,짜임새,기하학적 형상 등의 관념에 부응하는  그 무엇인가가 피사체의 얼굴에 명확히 드러났다고 여길 수 있을때까지 말이다. 사진작가는 사진이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선호하는 노출 방식이 있기 때문에, 피사체에 특정한 기준을 들이대기 마련이다. 카메라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생각도 존재하지만,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아의식을 싹 없앤 채 비교적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 것이나 사진에 담는다해도,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내재된 뭔가를 가르치려는 태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행위의 수동성 (그리고 편재성),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진이 우리에게 건네주는'메시지'이자 사진이 드러내놓는 공격성이다.

난 아직 카메라라는 도구에 대한 이해수준이 너무 낮아,
모든 결과물들은 기껏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대상을 선택하고, 내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대한 판단 등,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해석하는 것'으로 등치시키기는
조금 무안한 마음마저 들기도 하네.
어쨋든 수전손탁의 거침없이 휘갈겨대는 저 글쓰기 솜씨에 그저 멍하니 젖어있을 따름이다.
사진의 공격성...
임의로 선택하고, 맘대로 해석하고나서는 그 자체를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사진의 기제,
헌데 그 맛에 다들 사진 찍는 거 아냐...!!!

으...잠안와~~!!!

:
어슐러 K 르귄의 소설세계는 '헤인시리즈'와 '어스시시리즈'로 크게 양분된다.

고대와 미래, 지구와 우주 라는 시간과 공간의 교차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문제, 자유와 평등이라는 거대담론 위주의 사회성이 듬뿍 묻어나는 서사들이 헤인시리즈의 특징인 반면,  어스시시리즈는 고대 마법의 세계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마법사들의  모험이 철저히 자아를 중심으로 개인적인 차원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익히 듣고 보아온 반지의 제왕이나 헤리포터 시리즈와는 환상문학으로서의 진로가 이미 달랐다.
선과 악을 상정하고, 절대적인 힘의 열세를 딛고, 본질적인 선을 기득해온 주인공들이 모든 역경을 헤치고, 악을 무찌르는 구조가 일반적이라면,

어스시시리즈는 마법의 핵심이 존재마다 가진 본질적인 언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위협하는 어둠의 세력과 그 근본에서 인간을 유혹하는 악이라는 것은 결국은 절대선과 유전자가 동일한 복제된 이면일 뿐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극복하고 제거되어야할 것은 늘 개인의 내면에 그 또아리를 틀고 있고, 인간의 가장 약한 고리를 슬그머니 붙들고 늘어져 어깨에 올라타서는  함께하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한권 한권이 양이 많지 않다.
양장본으로 재편집되어 나온 황금가지 출판사의 어스시 전집은
작가가 미국의 고등학생에게 읽힐 만한 좋은 책을 써달라는 주변의 요청에 대답하듯,
나긋나긋하고, 쉽고, 편하게 쓰여진 소설을 여백많은 편집으로 소화한 이쁘장한 책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의 '게드전기'는 어스시시리즈의 3권인
'머나먼 바닷가'를 영화화한 것인데, 실재 책은 애니와는 차원이 다르다.

존재에 대한 성실한 탐구, 삶에 대한 진지한 화두를 붙잡고 있고 싶어하는 자,
이 시리즈를 거부하지 말지어다...^^


:

바둑두는 여자_샨사

book 2006. 10. 16. 13:02 |

다이 시지에에 이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그 두번째,
'샨사'의 '바둑 두는 여자'를 읽었다.

책을 잡고 앉아서,
먹고 마시는 일에 시간을 흘리지 않고
끝장을 넘겨버린 오랜만의 책이다.

호흡을 자제한 간결한 문체,
서로를 둘러싼 모든 소음으로 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듯한 주인공 두사람,
책장이 줄어드는게 어느 순간부터 안타까워지더군.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다,
허나 그런 사랑이 주는 낭만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
다이 시지에라는 중국 소설가를 알게되었다.
그의 소설 두권을 읽었는데,
하나는 '발자크와 바느질 하는 중국소녀'이고, 또 다른 소설은 'D의 콤플렉스'

'발자크....'는 68년 문화대혁명 이후 '하방정책'이라는 브르조아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산골짜기에서 살게된 사춘기 소년 둘과 그마을 바느질 소녀의 이야기이고,
'D의 콤플렉스'는 프랑스에서 프로이드 전공으로 10년을 유학하고 귀국한 한 남자의 좌충우돌 방랑기(?)이다.

D의 콤플렉스 줄거리를 좀더 이야기하자면, 프로이드 전공, 꿈의 해석자, 40대의 숫총각 남자인 유학파 지식인 뮈오는 자신의 첫사랑 후찬이 불법사진을 유포한 혐의로 감옥에 갇혀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그 후찬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집행하는 D판사의 소망은 숫처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즉 D판사가 후찬을 석방시키는 조건은 숫처녀와의 하룻밤인 것이었다.) 뮈오는 그때부터 숫처녀를 찾기위해 여인들의 꿈을 해석하는 여행을 떠난다. 즉 여인의 꿈을 듣고 그 여인이 숫처녀인지 아닌지를 구별해내는 것, 결국 그는 오랜 친구이자 동네 이웃이며, 결혼한 첫날밤 남편이 자살해버린, 시체방부처리사를 D판사에게 보내기로 하지만, D판사는 시체방부처리사를 맞이하기 전에 의문의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흠...뮈오라는 남자주인공은 중국식 돈키호테 혹은 채플린 같기도하다는...

공통점이라면 극악한 주인공의 상황에서도 키득거리게 만드는 웃음이 있다는 것이고,
사회나 국가라는 거대권력이 개인의 삶을 한계짓기도 하지만,
인간은 나름의 방식대로 슬기롭게 극복하는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훈훈함이 함께 살아있는 소설들인 듯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배경의 흥미로움이나, 스토리 자체의 아슬아슬함은 '발자크.....'가 더 나았으나, 'D의 콤플렉스'의 '뮈오'라는 주인공이 워낙에 찰리 채플린과 돈키호테를 섞어놓은듯한 강렬함이 살아있어 더 인상적인 것 같기도하다.

중국...가보지는 않았지만,
열혈 자본주의 모드로 치닫고 있다지,
그렇게 사회가 변해가는 속에 어느 한시절 일상의 왜곡을 경험한 자들과,
또 어렵사리 그 시절을 통과해온 자들의 추억과 쓸쓸함이
두 소설과 비슷하게 사람들의 표정에 남아있는걸 상상해본다.

그리고 여전히  TOP 은 날 괴롭히고 있다...ㅡ.ㅡ;
: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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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시,
가끔 이렇게 철없고, 속절없이 어딘가 철퍼덕 주저앉어서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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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녀석일것 같다.
지적인 욕망에 과장되이 들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현학을 일삼다가,
현실로 회귀했나 싶었더니,
'다카세가와'에서는 농밀하고도 요염한,
분명 작가 자신의 경험담을 기반으로 하지만,
또 언젠가 나도 한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가도,
또는 이런 장면이 한번쯤 일어날 것 같은 느낌에 들뜨게 하더군.

사실 책을 그리 깊이 빠져서 읽지 않는다.
눈은 종이위의 글자들을, 관심은 책과 그 외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난삽한 글읽기에 익숙하다보니,
책을 덮은후 책에 대해 그리 큰 인상을 남기지 않아왔건만...

흠...책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정사장면에 대한 세세한 묘사만이 아니라,
남녀간에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상황, 과거에 대한 회상,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교감들이
너무 신선했다.

괴물 같은 놈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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